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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나의 시간 보내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게임 여자 배구, VNL 참패

by 뉴이74 2023. 7. 8.

우리 시대 학창 시절 농구 대잔치의 열기는 대단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 농구, 여자 농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미도파와 현대와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였고, 그 당시 어린 마음에도 현대보다는 미도파가 더 약자 같아서 미도파를 응원했던 것, 초등하교 5학년 때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여자 농구 한국과 중국과의 경기도 기억이 난다. 최근 김연경,김수지, 양효진 선수의 국가 대표 은퇴로 인 VNL 여자 농구 24연패를 보면서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여자농구는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아시아 예전 전에서 한국은 결선 리그에 오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 왔다. 일본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남자 배구는 VNL에서 서구 강팀을 모두 이기고 8연승을 달린다고 하고, 일본 여자 농구도 일찌감치 한국을 앞섰다. 일본 여자 농구와 한국 여자 농구의 격차는 30점 차이가 날 정도다. 이제는 10점 정도만 따라왔을 것 같다.  두 국가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긴 걸까?

1. 내가 기억하는 그 경기 히로시마 여자 배구 금메달

아직도 나는 이 경기를 유튜브로 시청을 한다. 장윤희 선수를 비롯해서 호남정유 선수들과 김철용 감독으로 이루어진 팀, 국내 리그에서도 40연승 넘게 했던 조직력을 갖춘 팀이었지만, 국제에서도 이렇게 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나는 이 당시 군대에 있었는데, 히로시마 경기에서도 배구 경기를 너무 보고 싶어했는데, 다행히 나는 교육을 받으러 다른 부대에 있었다. 나의 부대에 있었따면 TV 시청은 엄두도 못 낼 위치였지만, 교육을 나가서는 교육이 끝나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경기를 보는 부대를 발견하고 건물 밖 창문에서 까치발을 들고 경기를 봤다. 한참을 보고 있을 때, 병사 한 명이 나와서, 소대장이 들어와서 보라고 했다고, 나를 막사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 이후 나는 아시안 경기 배구 대회를 볼 수 있었다.  여자 배구가 국기일 정도로 여자 배구를 사랑하는 일본은 한국과 중국 경기를 앞에 두고, 그 다음에 한과 일본의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 전날 한국은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중국을 3-2로 이겼고, 그 다음 경기는 히로시마, 일본이었. 이 경기 또한 우리는 일본을 3-2로 이겼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경기이다. 아직도 유투브에 이 경기가 있다. (56) 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3시간 풀세트 경기 - YouTube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기이지만 지금 봐도 손에 땀을 쥔다. 혼자 시간 보내기에 더없이 좋다. 

2. VNL 24 연패

김연경 선수는 2023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역활을 했다. 그래서 김연경 선수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한국 여자 배구 24연패를 보면서, 앞으로 나아질 기미는 없어, 참담할 뿐이다. 양효진, 김수지 선수,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개인에게 국가에 봉사하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 그런 걸 보면서 과거의 우리나라 선수들이 얼마나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장윤희 선수는 허리 부상에도 복대를 두르고 국제 대회에 계속 출전을 했다. 감독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선수들은 30이 되기도 전에 선수 은퇴를 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3. 여자 배구는 런던 올림픽 때가 전성기였다.

한국에서 여자 배구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나는 우리나라 여자 배구의 가능성을 점 쳤다. 선수들의  컨디션들이 너무 좋았고, 나이 또한 어려서 체력이 좋았고, 분위기가 좋았다. 김연경 선수를 비롯 양효진, 김수지 선수 등이 그 당시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김연경 선수를 중심으로 팀워크가 너무 높아서 어떤 팀이 나와도 다 이길 것 같았는데, 그 사실을 우리나라 여자 배구 감독과 배구 협회만 몰랐던 것 같다. 국가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감독관 하나 없이 감독에게만 경기를 맡기다 보니, 티비를 보는 관중들이 선수들을 파악할 정도였다. 그 당시 이숙자 선수와 볼 컨트롤이 김연경 선수에게 잘 맞았는데, 잘 되던 이숙자 선수를 빼고 다른 세터를 고집하는 감독. 티비를 보면서도 답답한데, 내가 어찔 할 바를 모르겠었다. 브라질을 비롯 그 당시 미국을 빼고 상위권 팀들을 다 잡았다. 미국도 잡을 수 있었는데, 굳이 이숙자 세터를 기용을 안 하는지 모르겠었다. 결국 3,4위전 일본과의 경기.  우리가 강팀들 다 잡아주어서 일본이 준결승에 오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감독은 끝까지 이숙자 세터를 기용하지 않으면서 아깝게 일본에게 져 4위 하게 된다. 그 당시 우리 선수들은 금메달도 딸 수 있었는데, 한국 여자 배구 사상 다시 못 올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얼마나 수장이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회였다. 2023 도쿄 올림픽에서 복수를 했다기에는 메달이 없없어 아쉽다. 내 기억이 무언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으나, 너무 아쉬웠던 런던 올림픽이었다. 

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여자 농구

한국에는 고등학교때부터 특급으로 불리웠던 한국의 여자 농구 선수들이 모두 실업팀으로 올라 왔고, 실업팀에서 프로로 전향하면서 여자 농구는 계속 발전했던 것 같다. 전주원, 유영주, 정은순 선수. 너무 대단했던 선수들이 모두 같이 있었다. 일본의 여자 농구 실력도 상당히 올라오고 있는 시점이었고, 전반전 일본에 리드를 당한 채 후반전을 맞이하였지만, 심판의 일방적인 경기 운영 방식에도 한 점 차로 역전을 하게 된다. 하지만지금 여자 농구는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몇 십년이 걸릴 것 같아. 아마도 지금의 운동 시스템이 바뀌지 않은 한 한국이 일본을 평생 이기지는 못 할 것 같다. (56)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결승전(대한민국:일본)-전반 - YouTube

5. 극복할 방법

여자 농구, 여자 배구는 한창 전성기였을 때는 뛰어난 체력을 가졌던 학생들이 있었다면, 농구나 배구를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팀을 이루기도 어려울 정도로 유소년 학교에서 농구팀, 배구팀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선수 선발이 어려울 것이다. 지금과 같은 다문화 시대에 한국에는 다문화 가족들이 있다. 체력적이면 면에서 스포츠에서 뛰어난 업적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자원들이 있는 것이다. 농구, 배구 관계자들은 다문화 학생들이 있는 초등학교로 가서 그들에게 농구, 배구를 가르쳐 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스포츠 미래는 남아있는 적은 수의 학생 수로만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해외 이민자나 국제 결혼을 한 다문화 가족의 자녀 분들이 한국의 미래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스포츠를 통해서 친구 사회나 지역 사회에 더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여러가지의 장점을 살렸으면 좋겠다.